Ladies Games
베르나르 뷔페 특별전
October 4-11, 2022
전후시대 구상회화의 왕자,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8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전쟁의 참혹한 광경들을 경험했고, 청소년기에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암흑이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건드렸다. 황량한 폐허, 폭력, 죽음과 같은 비극을 보고 자란 뷔페는 이러한 유년기의 경험들을 회화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 특징인 딱딱한 평면 구도, 공격적인 수직 수평선, 어두운 색채는 도시, 정물, 인물 등 다양한 주제 속에 녹아져 있다. 특히 인물 회화에서 그의 내면에 있는 어두운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앙상한 몸과, 표정 없는 얼굴에서 그들이 고통과 슬픔에 온 몸이 지배당한 차가운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원색의 밝은 색채를 사용했고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그렸음에도 그의 작품을 볼 때면 마냥 미소를 짓기 쉽지 않은 것은 겉표면의 화사함 뒤에 깊은 슬픔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분위기와 달리 그는 당시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았고, 권위있는 상들을 수상하며 전후 구상회화의 대표작가로서 영예를 얻는다. 하지만 말년에 이르러 그는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손목까지 다치게 되는데, 자신이 화가로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1999년 10월 4일, 사랑하는 아내와 마지막 식사를 하고 키우던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한 뒤, 잠깐 스튜디오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2층으로 올라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1970년도에 제작한 “Jeux de Dames” 판화 시리즈 10점을 감상할 수 있다. Jeux de Dames는 우리말로 ‘여자들의 유희’ 정도로 해석된다. 뷔페는 19세기 프랑스 시인들이 발표한 동성애에 관한 여러 시(poem)에서 영감을 받아 이 시리즈를 제작했다. 작품이 제작된 1970년의 프랑스에서는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작품들에 등장하는 두 여성은 반나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하고 있지 않다. 제목이 ‘유희’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앉아만 있거나 담소만 나누는 모습, 아주 약간의 살갗만을 맞대는 어정쩡한 모습 등 소극적인 자세들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또 누군가의 시선을 경계하는 듯 둘은 함께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창문 밖을 의식하고 있다. 작가는 이 판화 시리즈를 통해 당대에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그들의 사랑을 자유롭게 즐기지 못한 채 불안해했던 모습을 표현했다. 화면의 두 여성은 보편적 다수의 의견과 특이적 소수의 의견이 부딪힐 때, 그 소수에게 닥치는 정신적 압박감을 시선과 몸짓으로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오는 마찰을 제시한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들을 통해 오늘날에는 이러한 마찰들이 어떻게 해결 또는 지속되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동백화랑 김재동